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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대만 식민지배에 대한 미야자키의 사죄와 변명

대만 여행을 상징할 정도로 잘 알려진 지우펀을 실제로 다녀왔다. 버스투어를 하면서 다녀왔던 곳이라 투어가이드가 있었는데, 그동안 지우펀을 여행했다는 사람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들었다. 

 

지우펀은 일제에 의해 진과스 금광의 광산 노동자로 강제 징용되었던 사람들이 모여살던 마을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것이라고 기억하지 말아주었음 한다고 강조해서 말해주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미야자키 하야오가 모르고 지우펀을 애니메이션의 배경으로 사용했을리는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붉은 돼지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역사와 전쟁에 대한 관심이 많은 감독이다. 

 

글을 쓰려고 찾아보니 센과 치히로를 일본의 성매매 문화 비판과 연결지어 해석한 블로그도 종종 보였다. 나도 평소에 비슷하게 생각을 했어서 공감했다. 이런 측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대만에서 일어났던 광산 노동자 착취와도 연결이 되어있는 작품이다. 즉 센과 치히로는 감독이 자국이 저질렀던 역사 만행에 대한 반성과 변명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여성을 희생으로 내모는 문화를 묘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자세히 분석하자면 더 할말이 많겠지만 가볍게 어떤 상징이 숨어있는지 내 의견을 풀어보는 정도에서 그치는게 좋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무조건 이런 방향으로 해석하는게 아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이런 방향으로도 볼 수 있구나, 정도로 흥미롭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1. 센 즉 치히로는 조상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벌을 받고 사죄하는 어린 일본인 소녀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치히로의 부모는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그곳의 음식 훔쳐 먹는다. 이것은 진과스 광산의 금을 당시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채굴해간 것을 의미한다. 

부모는 조상을 의미하고, 치히로는 그 자손을 의미한다. 자손은 조상이 저지른 일에 대한 죗값을 치르기 위해 광산에서 희생당한 노동자들 (애니메이션 속에는 온천을 방문한 고객들로 등장한다.)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이 때 애니메이션에서는 온천일로 등장했지만, 그 상징은 성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있다는 해석에 동의한다. 

 

2. 왜 유바바는 이름을 가져갔을까?

이름은 곧 정체성을 의미하는데, 식민정책으로 인해 일본이 정체성을 뺏어갔던 행위에 대한 복수라고 볼 수 있다. 이름을 잊지 말아야 돌아갈 수 있는 것은 피지배국이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투쟁했던 것과 같다. 창씨 개명이 생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죄는 결국 피해자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3. 오물신을 치료하고 다시 강의 신으로 되돌려준 센

 같은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이것 역시 당시 대만인들이 받은 상처에 대한 치유로 해석할 수 있다. 그 구조에서 하필 어린 소녀가 희생되었다는 점은 역겹고, 좋은 의도로 해석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깊이 쌓아 온 원망과 상처에 대한 참회는 단순한 사과의 말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4. 유바바와 유바바의 언니 제니바가 상징하는 것

 쌍둥이는 곧 하나를 의미한다. 나도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을 동시에 가진다. 즉 유바바와 제니바는 둘로 나뉘어진 존재가 아니라 어떤 하나의 존재가 가지는 극단적인 두가지 입장을 의미한다. 유바바는 증오의 존재인 반면 제니바는 용서와 이해의 존재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을 감정과 이성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이성(제니바)은 잘못에 대한 정확한 조치와 그 이후에는 바로 용서가 뒤따를 수 있지만 감정(유바바)은 그게 쉽게 되지 않는다. 하쿠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처벌을 한 후에는 더 이상 책망하지 않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5. 가오나시가 상징하는 것은?

 가오나시는 대만의 당시 원주민을 상징하는 신들의 세계에서 받아주지 않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천에 들어와 사금을 주면서 꼬시며 닥치는대로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자신도 소화하기 어려울 지경으로 일단 우겨넣고 본다. 그리고 그것을 제지하는 것은 센이다.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이 대만을 일본에게 넘겨주면서 오히려 중국 지배 시기보다 숨통이 트인다고 느꼈던 대만인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때 가오나시의 모습이 중국의 모습과 조금은 유사한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가 소심해서 맥락에 맡겨두는게 좋겠다. 

 

6. 유바바의 아들 보우는 왜 센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이부분은 먼저 내가 역사적 측면해서 해석한 이 토대로 위 내용을 그대로 대입시킬 수 있고, 두번째는 기본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부모로부터의 독립과 여행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센이 일본인의 후손이라면 보우는 대만인의 후손일 것이다. 후손이 사죄해야 한다면 용서 또한 후손이 해주어야 한다. 조상에 해당하는 유바바의 용서보다 사실 보우의 용서가 선행한다. 그래서 사죄를 끝마친 센을 억지로 붙잡으려 하는 유바바를 보우가 놓아주라고 말한다. 

 위에서 해석한 바에 따르면 감정에서 출발했던 보우가 이성을 거쳐 다시 감정으로 돌아오게 되고,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라고도 연결지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에 와서는 대만이 일본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곳곳에서 일본어를 볼 수 있고 일본어 콘텐츠를 대만인들이 아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번째로 보우는 부모의 과보호 안에 갇혀있던 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이다. 이것은 내가 해석했던 역사적 측면과는 무관할 수 있다. 보우와 유바바의 이야기는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자립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우는 센을 따라다니며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나서 혼자 일어설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절실한 사과이자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매국을 일삼았던 조선 지식인들의 사과에는 언제나 변명이 묻어 있듯이 사과에는 변명이 빠지기 어렵기 때문에 이해한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하필 그 사죄의 제의를 이어나간다는 점이 너무 일본스러운 스토리라 마음에 들진 않았다. 그 안에 성적인 요소가 담겨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해석이라 더 역겹다.

 

 

 

 센과 치히로는 여러면에서 재미있게 본 작품이고, 이번에 지우펀을 다녀오면서 뜻밖의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만약 지우펀에 가게 된다면 이 글이 관광지의 의미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는 센과 치히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방면의 해석과 재미를 덧붙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